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2차 장풍전쟁 (문단 편집) === 서북군의 거병 === [[1929년]] [[10월 10일]] 은거한 펑위샹을 대신하여 서북군을 지휘하고 있던 [[쑹저위안]](宋哲元), 석경정 등 27명이 [[편견회의]]에 대한 반대를 표명하며 장제스의 6대 죄상이라는 것을 거론하고 장제스가 물러나지 않으면 중국이 망한다고 주장하며 중앙정부에 항전할 것을 통보하였다. 서북군은 일제히 9갈래로 나뉘어 섬서에서 하남으로 진출하고 뤄양에 사령부를 설치한 후 농해철로를 따라 동진하는 한편 [[우한]]을 노렸다. [[국민정부]]는 10월 11일, 서북군에 대한 토벌령을 발동하고 쑹저위안, 석경정 등을 면직했다. 장제스는 10월 14일 토벌군 총사령관에 취임하였고 <전국 장병에게 알리는 글>을 발표했다. ||한과 적은 양립하지 않고, 혁명과 반혁명은 공존할 수 없다. 반역군을 소멸시키지 않으면, 반역군에 소멸당할 뿐이다. 각 장병은 당과 국가의 생존을 위해 단결하여 반동세력을 뿌리뽑고 혁명군인의 천직을 완수하기 바란다.|| [[장쉐량]]은 10월 10일, 긴급회의를 소집하여 옌시산, 펑위샹과 연대하여 장제스를 협공하여 신정부를 수립하는 일에 대해 논의했으나 원금개를 비롯한 만주 구파 원로들은 보경안민 정책의 고수를 강력히 주장했다. 장제스가 통전을 보내 펑위샹을 치기 위한 출병을 요청하자 장쉐량은 중앙옹호를 통전하면서도 [[중동로 사건]] 처리를 위해 군대를 뺄 수 없다고 대답했다. 10월 19일 장쉐량은 회의를 열어 동북군 장령들의 의견을 살폈다. [[탕위린]] 등 동북군 장령들은 옌시산과 제휴하여 펑위샹을 토벌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고 장쉐량은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한편 [[탕성즈]], 방정영이 지휘하는 토벌군이 서북군을 타격하기 위해 출동했고 10월 말, 뤄양 동남쪽 임여, 등봉, 흑석관을 통과한 토벌군은 쑹저위안, 손양성, 석경정과 격렬한 교전을 벌였다. 이 시점이 되자 만약 장제스가 펑위샹과 옌시산의 연합군에 의해 무너질 경우, 강성해진 펑위샹 세력이 동북을 위협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린 만주 구파가 중앙옹호를 결정했다. 10월 31일 만주의 원로들이 장쉐량에게 중앙을 옹호할 것, 옌시산과 펑위샹에 대해서는 평화수단을 채택할 것 등을 건의했고 장쉐량은 이를 수용했다. 11월 3일 장제스가 직접 허창으로 나아가 독전했지만 정예부대를 앞세운 서북군은 등봉, 임여진의 각 요지를 점령하고 밀현에 이르렀다. 이는 허창과 정저우를 정면공격을 통해 함락시켜 평한철로와 농해철로의 교통을 차단하려는 것이었다. 토벌군은 반격을 통해 밀현의 서북군을 격퇴했으나 서북군의 저항이 완강하여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